“사랑은 어쩌면 우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지도 모른다.”
무라카미 하루키의 《스푸트니크의 연인》은 이 말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이야기다.
소설을 덮고 나면, 마음 한켠이 공허한 채로 오래 남아 있는 느낌. 그 여운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하면, 결국 우리는 다시 이 책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오게 된다.
스미레는 왜 사라졌을까?
단순한 실종 사건으로 보자면, 그녀는 그저 어디론가 떠난 것이다.
하지만 이 소설에서는, 그녀의 ‘실종’이 꼭 물리적인 이동일 필요는 없다.
마치 현실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된 영혼처럼, 스미레는 자기 내면에서 넘쳐흐른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‘이 세계’에서 벗어난다.
그녀는 사랑을 해버렸고,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스스로의 중심을 잃는다.
그 결과, 우리는 그녀의 흔적만을 따라가며 ‘사라진 이유’를 추적하게 된다.
미우가 관람차 안에서 본 것은 누구였을까?
그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땐 섬뜩하다는 느낌부터 들었다.
거울 속에는 자신이 있었고, 동시에 자신이 아니었던 존재.
그녀는 그 안에서 자신이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본능적인 모습을 보고 만다.

⬆️ 관람차 안에서, 미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.
그것은 충격이었고, 동시에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었다.
그래서일까. 그날 이후 미우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.
그녀는 감정을 접어두는 쪽을 택했고, 스미레가 건넨 순수한 감정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다.
‘나’는 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을까?
소설의 마지막은 설명되지 않는다.
스미레는 돌아오지 않았고, 전화기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만이 짧고 어색하게 남아 있다.
그 짧은 목소리를 듣고, ‘나’는 말한다.
아무 말도 하지 않고, 조용히 수화기를 귀에 댄 채,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.
기다림.
사랑이 사라진 후에도, 우리는 흔적을 따라 기다린다.
그리고 그 기다림 자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.
사랑은, 연결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
《스푸트니크의 연인》은 이야기보다는 감정으로 읽는 책이다.
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, 닿지 못한 거리, 그리고 무엇보다 ‘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한 갈망’이 글 전반을 감싸고 있다.
모든 것이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.
사랑이라는 건 원래 완성되지 않는 감정일 수도 있으니까.
무라카미 하루키,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만날까요?
《스푸트니크의 연인》을 다 읽고 나면, 하루키가 그려낸 또 다른 세계가 궁금해집니다.
곧 이어서 《노르웨이의 숲》, 《1Q84》, 《해변의 카프카》 등도 리뷰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!